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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융연구원 회보 '길'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입니다.
작성자 정찬승
발행일 2000년 12월 30일
권호 제1권 1호
ㆍ조회: 3722  
IP: 222.xxx.211
길을 열면서

  세상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

  좁은 길이 있고, 넓은 길이 있다. 구불구불한 길도 있고 곧바른 길도 있다. 山길, 오솔길, 언덕길, 고갯길, 그리고 시냇가로, 마침내 江가로 이어지는 뚝길,― 험한 돌길이 있는가 하면 아스팔트로 포장된 평탄한 도로가 있다. 땅의 길만이 길이 아니다. 물길, 바닷길이 있고, 하늘에도 길이 있다.

  많은 사람이 제각기 여러 몸짓으로 여러 가지 길을 가고 있다. 좁고 가파르고 험한 길을 가는 사람도 있고 넓고 편안한 길을 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누구나 한결같이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험한 길을 가다가도 편안한 길로 들어서는 사람이 있고 편안한 길을 가다가 느닷없이 돌가닥 길을 헤매는 경우도 있다. 길은 그렇게도, 이렇게도 이어져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일을 겪게 해준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쪽으로 가야 한다. 아니, 저쪽으로 가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 내가 가는 길은 옳고 네가 가는 길은 틀렸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래도 고민한다. 무엇이 옳은 길인가? 하고.― 어느 길로 가야 할까? 내가 갈 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몰라 헤맨다. 이런 경우 세례자 요한처럼 광야에서 소리치는 예언자가 필요할 지 모른다. 지혜로운 지도자가 무엇이 옳은 길인지를 가리켜주면 좋을 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세상이 너무나 복잡해졌고 사람들이 다 똑똑해져서 ‘위대한 지도자’의 말을 곧이 듣지 않게 되었다.

  이 작은 글터는 길을 찾는 사람을 위해서 꾸미기로 했다. 함께 길을 가는 사람­道伴­을 위해서, 혹은 혼자서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을 위해서 만든 작은 窓이다. 아직은 매우 빈약하지만 차츰 그곳에 쉼터도 있고 茶 한 잔의 위로도 있을 터이다.

  우리는 여기서 說法을 강요할 생각이 없다. 어느 길이 옳은 길이라고 제시할 생각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왜냐하면 개인 개인의 가는 길은 다를 수 있고 또한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카알 구스타브 융의 분석심리학을 통해 우리가 확신하고 있는 바는 개인은 그 자신의 전체성을 실현함으로써 사회의 성숙과 통합에 이바지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전체가 되기 위해서 찾아가는 길은 어느 먼 땅위에, 바다 위에, 혹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 마음속에서 길을 찾는 사람, 창조와 파괴를 함께 지닌 인간의 심혼 속에서 그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하는 치유의 궁극적 신비를 찾는 사람들.― 이들을 위해 이 길을 연다.

 

<李符永, 本院 院長>

 

 

발행일 권호
2 융의 어록 2000년 12월 30일 제1권 1호 3741
1 길을 열면서 2000년 12월 30일 제1권 1호 3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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