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letin

한국융연구원 회보 '길'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입니다.
작성자 정찬승
발행일 2002년 8월 31일
권호 제3권 1호
ㆍ조회: 2607  
IP: 222.xxx.211
西蕉칼럼- 월드컵 이후 우리의 과제
 

 

월드컵 이후 우리의 과제

 

2002 6월은 월드컵으로 인해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우리에게 안겨준 달이었다.

우리의 선수들은 너무도 잘 뛰었고 하는 경기마다 기적처럼 승리를 거두는 것을 보면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온 국민이 거리로 뛰어나와 응원하고 서로 손을 맞잡고 기뻐 하였다. " - 한 민국"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증오와 투쟁과 피투성이의 혁명을 표현하던 붉은 색은 이제 뜨거운 열정과 사랑의 색이 되어 국민의 마음속에 앙금처럼 남아있던 저 뼈아픈 레드 콤플렉스를 씻어 주었다우리의 태극기는 대극의 융합원리에 걸맞게 높은 국기계양대에서 내려와 젊은이들의 뺨과 몸을 다정하게 휘감았다. ‘붉은 악마’는 ‘천사’의 모범을 보여 응원의 질서를 유도하고 응원장의 쓰레기를 치움으로써 서유럽 중남미 흘리건의 난동이 결코 축구판의 일상사가 아님을 전세계에 가르쳐주었다. 그리하여 어두운 뒷골목에서 담배 피우며 서성이면서 학교와 가정에서 소외되었던 청소년들도 일상의 권태 속에서 별 보람없이 삶을 소비해온 주부들도 이날만은 모두 붉은 악마의 옷을 입고 환호하면서 선수들과 함께 영웅이 되었다

이런 현상에 접하여 언론과 정치인과 경제인과 학자들은 재빨리 이 열기를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정신의학자는 의사답게 월드컵 이후 증후를 염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열광적인 대중집회는 오히려 개인의 신경증적 불안과 우울을 씻어버리는 일시적인 치유의 효과를 보여 준 듯 하다. 월드컵의 엄청나게 결집된 에너지를 ‘좋은’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시도도 얼마간의 성과를 거두고는 있으나 모든 것이 그렇게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닌듯하다. 왜냐하면 집단은 일시적으로 사람을 하나의 구호아래 뭉치게 할 수는 있으나 그 구호에 대한 개인개인의 확고한 통찰 없이는 그 상태를 오래 유지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월드컵의 열기는 차라리 한 때 아름다웠던 사람들 사이의 일체감과 협동 - 그 가능성을 추억으로서 확인 하는 것으로 족할 지 모른다.

그러나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다. 6월의 영광은 공짜로 얻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국민의 열광적인 응원이 선수들의 사기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그러나 히딩크 감독이 선수단의 기본체력과 기본기와 조직력을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가며 꾸준히 준비하지 않았던들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성과였다한때 불신과 불만 속에서 히딩크는 영웅이 되기 전에 이미 영웅신화에서 겪어야 할 시련을 겪었다선수들 또한 참담한 패배의 역사 속에서 재기하기 위한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하였기에 그 값진 영광을 얻게 된 것이다.

히딩크식 조련은 사실 유럽사회에서는 특별히 영웅적인 것도 아니다그것은 오랜 장인훈련의 전통을 가진 유럽의 마이스터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그 특징은 사람의 ‘실력’이 개인에 대한 ‘인정’에 앞선다는 점이다학생이 개인적으로 아무리 선생과 친하다고 하더라도 학생의 가정배경이나 사회배경이 무엇이라 해도 성적을 매길 때는 철저하게 실력대로 평가하며 이 평가에 절대 순종하는 전통이다이것은 자기의 전문분야에서 엄격하게 훈련 받고 일가를 이룬 사람으로 전문분야에 대한 무한한 긍지와 존중을 가진 사람만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이다. 인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교육을 냉혹하다고 하고 비인간적이라 할 것이다그러나 무엇이 오늘의 국제사회에서 경쟁력 있는 교육인가하는 것을 히딩크는 축구의 영역에서 밝혀준 것이다

히딩크에게는 환상이 없다그는 결코 호언장담하는 법이 없었다정확하게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일관 했다. 걸핏하면 앞질러 추측하고 우리의 승리를 장담하는 우리나라 대중매체의 허황한 행태와 다른 점이다그것은 바로 그의 나라와 그가 자라난 문화권의 오랜 전통으로 정착한 과학적 정신과 이를 토대로 한 냉철한 이성적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아직 우리에게 많이 모자라는 부분이다.

월드컵 이후 세상은 다시 그 이전으로 되돌아 가 있다. 물론 축구리그가 활성화되고 유소년잔디축구장을 세우자는 운동이 일고 있다그러나 휴가철 바닷가에서 쓰레기를 마구 버리고 10대들이 술에 취해서 비틀거린다는 소식이 들린다이들도 한때는 붉은 악마의 빨간 셔츠를 입고 대-한민국을 불렀을 터이다청년들이 환호하던 대학로의 쓰레기도 여전하다. 집중호우로 제방이 떠내려가 한 동네가 물바다가 되었다산을 뚝 잘라서 집을 지은 까닭에 집중호우로 흙더미가 무너져 건물을 덮쳐 많은 사람이 죽었다그 중에 정신지체 및 지체 장애자 열한 명이 흙더미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도대체 이 나라에는 절개지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자연을 손상시키지 않고 집을 짓는 법을 아는 환경공학자나 토목공학자가 하나도 없단 말인가이 나라에는 뚝을 어떻게 보수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단 말인가모든 것을 주먹구구로 겉모양만 번듯하게 하는데 신경을 쓴다전국토가 파헤쳐지고 잘리고 국립공원에 터널이 뚫리는 등, 만신창이가 되고 있는 판국에 건설당국은 신도시를 여러 개 건설한다고 호언한다도시의 기본설계와 지하의 시설과 환경을 과학적으로 검토하는 오랜 준비 없이 도깨비 방망이 놀리듯 뚝딱 지어놓는 고층빌딩은 모래 위의 누각일 뿐이다

정치판은 여전히 진흙탕 싸움으로 인신공격, 네 탓 내 탓에 여념이 없고 정책과 이념이 아니라 사람끼리의 파벌과 계파를 중심으로 이합집산한다영리한 학자들은 돈이 생기는 연구에 재빨리 편승해서 보따리장사처럼 이것 저것 지식을 팔아 부질없이 지식공해만 늘리고 있다비록 오늘 화려한 빛을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한가지를 꾸준히 노력하고 탐구하는 마음이 없다

이번 월드컵은 우리에게 모든 분야에서 기초를 다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유익한 일인지를 명백히 증명 하였다. 그러자면 보이지 않는 작업을 끈질기게 지속하는 인내와 의지와 신념을 길러야 하며 오늘도 묵묵히 악조건 속에서 꾸준히 기초를 다지고 있는 분야를 찾아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할 것이다

월드컵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승자의 기쁨을 맛보았다우리는 잠시 패자의 억울함과 아픔을 외면 하였다많은 패자가 있기에 승자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패자의 쓰라림은 만약 냉철한 상황판단과 올바른 방법을 일관되게 추진한다면 승리에 이를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임을 월드컵은 도한 가르쳐주고 있다.

 

<李符永, 本院 院長>

발행일 권호
14 융의 어록 2003년 2월 28일 제4권 1호 2971
13 西蕉칼럼 - 새해의 길목에서 2003년 2월 28일 제4권 1호 2629
12 분석심리학 용어해설 - 페르조나 Persona 2002년 8월 31일 제3권 1호 4783
11 융의 어록 2002년 8월 31일 제3권 1호 3170
10 西蕉칼럼- 월드컵 이후 우리의 과제 2002년 8월 31일 제3권 1호 2607
9 분석심리학 용어해설 - 그림자 Shadow 2001년 12월 31일 제2권 2호 4323
8 융의 어록 2001년 12월 31일 제2권 2호 3001
7 西蕉칼럼 - 우리가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 2001년 12월 31일 제2권 2호 3632
6 분석심리학 용어해설 - 콤플렉스, Komplex, Complex 2001년 7월 31일 제2권 1호 5025
5 융의 어록 2001년 7월 31일 제2권 1호 2942
4 西蕉칼럼 - 숲속으로, 꽃길을 따라 2001년 7월 31일 제2권 1호 3358
3 분석심리학 용어해설 - 투사(投射 Projection)란? 2000년 12월 30일 제1권 1호 8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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