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letin

한국융연구원 회보 '길'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입니다.
작성자 한국 융 연구원
발행일 2006년 10월 1일
권호 제7권 2호
ㆍ조회: 5038  
IP: 125.xxx.253
西蕉컬럼 - 프라멩코 춤과 처용의 춤
西蕉컬럼
Seo-Cheo Column

프라멩코 춤과 처용의 춤
Dance of Flamenco and dance of Cheoyong


  몇해전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국제학회가 있어서 융연구원의 연구원들과 함께 다녀온 일이 있다. 그 때 일부나마 스페인 문화의 매력적인 정취를 한 껏 맛보며 여기 저기 둘러 보았는데 돌아오기 전날이었던가 마드리드에서 누군가가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플라멩코 춤은 보고 가야하지 않겠느냐 해서 그러자 하여 근처의 자그만 극장으로 들어가 춤을 구경했다. 극장이라야 50석 정도 될까, 한편으로 마루바닥 무대가 있고 사람들이 주위에 빼곡히 둘러앉아 음료수 한가지씩 시키고 무대를 지켜본다. 늘씬한 무희들의 유연한 군무群舞는 나그네의 여독을 씻어주기에 충분했고  쉴새 없이 바뀌는 레파토리는 지루함을 느낄 겨를조차 주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시선을 끈 것은 그 가운데서도 한 남자의 춤이었다. 아마 틀림없이 이름있는 무용수였을 것이다.
  그는 영화배우 더스틴 호프만처럼 생겼는데 작으마한 키에 커다란 눈, 까만 머리와 까만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플라멩코 춤 특유의 발구르기와 팔과 손끝에 이르는 긴장된 동작과 빠른 템포의 몸놀림, 어느 순간에 홱 돌아서며 쏘아 보는 눈 빛은 섬뜩한 느낌조차 주었다. 그는 자주 무대에 나와서 혼자 춤을 추었는데 나중에는 거의 신들린 듯 춤을 추었고 이마에선 땀이 비오듯 했다. 또 한 사람의 키가 큰 블론드 머리의 남자도 열심히 춤을 추었지만 그것은 그저 열심히 움직이는 동작일 뿐 魂이 들어있는 춤이 아니었다. 그때 나는 플라멩코 춤을 예사로 볼 일이 아니라는 느낌을 갖게 되면서 문득 처용處容의 춤을 생각했다.
  처용은 알다 싶이 동해용왕의 아들이며 신라 헌강왕때 임금님을 보좌했다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처용이 달밤에 밤새도록 밖에서 놀다가 돌아와 보니 아내가 역귀疫鬼와 함께 누어 있었다. 그는 조용히 뜰에 나가 노래를 지어 부르며 춤을 추었는데 이에 감복한 역귀가 나와 엎뜨려 사죄하기를 앞으로는 처용의 형상을 그린 그림만 보아도 가까이 오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고 돌아갔다. 처용의 춤은 이런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다. 처용의 노래가사가 체념을 뜻하느냐 역귀에 대한 강력한 항의와 협박을 뜻하느냐에 대해서는 국문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다.
  나는 처용의 춤을 여러 해 전에 덕수궁 근정전 앞 무대에서 본 일이 있다. 턱이 길고 코가 큰 이국적이면서도 좀 싱겁게 생긴, 몸의 키와도 어울리지 않게 큰 흑갈색 가면을 쓴 다섯명의 무용수가 빙빙돌면서 천천히 훨훨 날으듯이 추는 춤이었다. 아무리 세속적인 애정관계에서 초연한 처용이라고 해도 그 때 그 상황에서 처용이 저렇게 점잖게, 조금은 맥빠지게 춤을 추었을 리가 없다. 마드리드의 플라멩코 무용수의 춤을 보며 나는 처용의 춤도 그처럼 강한 발구르기와 위협적인 손짓과 강열한 눈 빛으로 역귀疫鬼를 물리쳤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그저 혼자 마음에 담고 있다가 최근에야 플라멩코와 우리나라 가면극에 대한 책을 읽어 보고 나의 추측이 과히 틀리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플라멩코 춤의 기원에 관해서는 여러 이설이 있지만 이 춤은 “위를 향하는 춤이 아니라 아래를 향한 춤”이며 “억압에 저항한 분노의 불꽃”이라는 것이었다.
  원시종교에서 춤이 차지하는 역할로 볼 때 춤에는 신령을 맞이하고 그를 즐겁게 하는 놀이의 목적과 악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두가지 목적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나는 플라멩코 춤도 처용의 춤처럼 역귀(병귀신)나 악귀를 내쫒는 주술적인 춤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의 처용 춤이 너무 동작이 느리고 편안한 것은 고려조에서 조선왕조로, 왕조를 거듭하여 궁중에서 나례儺禮의 한 형식으로 받아드리다 보니 신라 춤이 변질해서 그렇게 느릿 느릿하고 훨훨 나르는 군무로 바뀐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는데 책을 보니 그 생각이 조금은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든다. 처용의 춤은 본래 5인조의 군무群舞가 아니고 혼자 추는 춤이었는데 세종대왕때부터 군무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적혀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춤사위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알길이 없다. 처용 이야기의 내용으로 보아 플라멩코와는 좀 달랐을 지도 모른다. 다만 신라의 활달한 정신적 기풍을 생각할 때 처용의 춤은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고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절묘한 조화의 몸짓이 아니었겠나 짐작할 뿐이다.
  이 갈등과 혼돈의 시대에 우리 모두가 자신을 위해 추어야 할 춤 사위를 생각해 본다.
 

(西蕉 李符永 院長)
Bou-Yong Rhi

발행일 권호
38 융의 어록 2007년 4월 1일 제8권 1호 8327
37 西蕉칼럼 - 길을 걷는 사람들 2007년 4월 1일 제8권 1호 5813
36 분석심리학 용어해설 - 전이와 역전이 Transference and countertransferen.. 2006년 10월 1일 제7권 2호 15738
35 융의 어록 2006년 10월 1일 제7권 2호 5229
34 西蕉컬럼 - 프라멩코 춤과 처용의 춤 2006년 10월 1일 제7권 2호 5038
33 분석심리학 용어해설 - 심리학적유형 (5) -직관형 intuition type 2006년 4월 1일 제7권 1호 8266
32 융의 어록 2006년 4월 1일 제7권 1호 5309
31 西蕉칼럼 - 영웅을 기다리는 마음 Waiting for genuine heroes 2006년 4월 1일 제7권 1호 4055
30 분석심리학 용어해설 - 심리학적유형 (4) -감각형 sensation type 2005년 10월 1일 제6권 2호 5448
29 융의 어록 2005년 10월 1일 제6권 2호 4433
28 西蕉칼럼 - 만남 Encounters 2005년 10월 1일 제6권 2호 4832
27 분석심리학 용어해설 - 심리학적유형 (4) -감정형 feeling type 2005년 4월 13일 제6권 1호 7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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