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letin

한국융연구원 회보 '길'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입니다.
작성자 정찬승
발행일 2006년 4월 1일
권호 제7권 1호
ㆍ조회: 4055  
IP: 222.xxx.211
西蕉칼럼 - 영웅을 기다리는 마음 Waiting for genuine heroes
 
영웅을 기다리는 마음
Waiting for genuine heroes

 
  프로 미식축구 피츠버그팀의 수퍼볼 우승 축하행진에는 25만명의 시민이 모여 수퍼 볼 최우수 선수 MVP가 된 미식축구 영웅 한국계 하인스 워드 등을 열열히 환영하였다고 한다. 군중들 가운데는 이 ‘영원한 피츠버그의 아들’을 보기 위해 뉴욕에서 한 달음으로 달려온 유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역경 속에서도 막일을 하며 아들의 뒷바라지를 해온 어머니의 반응이다: “인생에는 언제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법이니 올라갈 때 조심해야죠.” 아들에게 “언제나 겸손하라”고 가르쳐온 어머니 자신의 고된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충고였다.
  사람들은 영웅을 기다린다. 그것은 위대한 일을 해낸 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의 마음이다. 인간은 감동感動을 원한다. 영웅들은 인간에게 감동을 준다. 그러나 우리를 감동케 하는 것은 영웅의 빛나는 승리 뿐 아니라 그 승리에 이르기까지의 피나는 노력과 여러 차례의 좌절과 실패와 극복의 역사이다. 사람들은 여기서 희망을 갖는다. 우리도 노력하면 할 수 있다고.― 10년전 IMF위기로 온 나라가 실의에 빠진 그 암울한 시기에 맨 발로 물가에 내려가서 거기 떨어진 공을 멋지게 쳐낸 여자 골퍼 박세리의 승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던가? ‘태극전사太極戰士’들의 한일 월드컵 4강 진출은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의 스트레스를 일시에 날려 보냈던가?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에 그런 영웅은 많을 수록 좋다. 사회 각 분야에서 영웅을 길러내고 영웅을 찬양하고 영웅을 닮고자 노력하는 것이 조금도 나쁠 것이 없다.
  그러나 여기에 주의할 것이 있다. 가짜 영웅에 속아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진짜와 가짜는 닮은 데가 많을 뿐 아니라 때로는 가짜가 진짜보다 더 그럴 사 하게 보이기 때문에 그 감별은 쉽지 않다. 진짜 영웅이란 치열한 시련을 겪고 이를 이겨낸, 말하자면 고난을 통해 영웅의 능력이 검증된 자이지만 가짜 영웅은 날조된 각본과 만들어진 후광後光과 각광脚光으로 영웅 비슷하게 보이도록 치장되고 포장包裝된 자들이다. 대중매체는 그러한 영웅 상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가짜에도 일말의 진실이 섞여 있고 진짜에도 허식과 과장이 덧붙쳐져 있다. 그것은 영웅을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이 영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가장 감동적이고 가장 매력적인 영웅신화의 주인공을 현실에서 경험하고 그를 신격화하려 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것은 또한 영웅을 기다리는 우리 인간의 마음이다.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는 영웅의 씨앗, 구원자의 씨앗이 다른 원초적 인간적 조건들과 함께 들어 있다. 그것은 우리의 꿈속에서 가끔 영웅적 행위를 보여주는 신화적 영웅상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그것을 영웅원형상英雄原型像이라고 부른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암울한 시대, 가치관의 혼란, 주체성의 동요, 모성적 권력에의 의존, 나태와 권태, 경직된 획일주의, 그런 시대일 수록 사람들 마음 속의 영웅 원형이 ‘좌정坐定’한다. 즉, 활성화되면서 배열된다. 그것은 마치 정월 초하루 동해안 바위 위에 서서 캄캄한 밤의 바다 위로 떠 오르게 될 태양을 기다리는 수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도 같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웅 비슷한 사람을 만들어 보이면 그는 영웅이 된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마음속의 영웅 원형상을 밖에 있는 그 사람에게서 보고 그가 진정한 영웅이라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구시대의 불의, 부패를 쳐 부수는 영웅일 뿐 아니라 민족을 이끄는 구원자, 말하자면 ‘민족의 태양’이 된다.
  이 경우 신화를 확고히 하기 위한 많은 선전 기술, 그 가운데서도 원형을 자극할 수 있는 단어들, ‘세계 최초’, 혹은, ‘우리민족’, ‘우리끼리’등 배타적인 혈족본능과 달콤한 민족감정에 호소하는 단어라든가 인류의 영원한 숙제이고 민족의 소망인 ‘통일’이라는 원형적 상징 언어들이 국민의 집단적 무의식의 심층을 자극하기 위해 동원된다. 영웅신화가 구체화되면 현실을 바라 보는 사람들의 냉철한 인식능력이 흐려진다. 이때 신화를 위한 역사의 왜곡은 당연시되고 이데올로기가 학문과 예술의 탈을 쓰고 거들먹거린다. 그리고 또한 영웅이 무찔러야 할 괴물(적敵)을 바깥세계에 확실히 부각시키는 일 또한 예정된 수순이다. 히틀러가 자신을 게르만의 영웅 및 구원자로 만든 데는 그가 ‘나의 투쟁’에서 공공연히 밝혔듯이 ‘거짓말을 수 없이 반복하여 진실로 믿게 만드는 전술’이 주효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대중들의 ‘영웅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유세계에서는 영웅이 대중의 무대에 등장하면 주인공은 대개 영웅신화에 나오는 영웅의 운명을 자동적으로 겪게 된다. 그것은 영웅의 오만과 몰락이다. 사람들이 영웅의 월계관을 씌워줄 때 우쭐해져서 씌워준 영웅 페르조나(假面)에 자신을 맞추다 보면 심각한 내면의 분열을 경험하게 된다. 결국 영웅은 사람들의 요구를 채우지 못하고 좌절한다. 찬양은 멸시와 증오로 곤두박질한다. 사람들은 실망하여 영웅을 가차없이 끌어 내리고 욕하고 저주한다. 물론 자기가 투사한 영웅상을 영원히 붙들어 두기 위해 영웅의 자격상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므로 영웅이 된다는 것은 신화적 영웅의 운명을 떠안는 부담을 갖는 것이다. 하인스 워드의 어머니는 바로 ‘영웅 원형상과의 동일시’가 지닌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영웅이 된다는 것은 신神이 되는 것이며 神은 초인적이거나 비인간적이다. 사람이 영웅신과 동일시하면 그는 파괴와 창조라는 신의 모순된 양면을 동시에 떠 안게 된다. 한 민족의 영웅은 다른 민족에게는 침략자이고 잔인한 폭군이다. 폭탄을 안고 무고한 군중 속으로 몸을 던지는 자살 테러리스트는 그 종족에게는 영생이 보장된 영웅이다. 어제의 빛나는 영웅은 내일의 사기꾼이 된다. 영웅을 기다리고 그를 숭배하고 싶은 인간의 충동이 역사적으로 어떤 영웅들을 만들어 왔는가를 생각할 때 그런 마음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묻게 된다. 우리가 바라는 영웅은 어떤 영웅인가? 우리는 후광과 각광으로 장식된 영웅 비슷한 자를 원치 않는다. 각고의 노력과 실력으로 이루어진 진짜 영웅을 원한다. 대중앞에 드러낸 영웅보다 드러나지 않은 영웅을 바란다. 드러나지 않은 영웅이 많을 수록 그 사회의 토양은 비옥해진다. 괴물과 맞서 싸워서 창으로 괴물을 찔러 죽이고 거기 갇힌 여인을 해방시키는 그리스 신화 페르세우스형 영웅도 필요하지만 매일 매일 두꺼비에게 밥 찌꺼기를 주는 정성 하나로 지네를 퇴치하는 한국의 순이 형(지네장터 설화!)영웅의 존재는 우리에게 더 없이 소중하다. 싸워 이기는 자만이 영웅이 아니고 인내와 극기로 큰 일을 하는 자, 그를 이기게 한 자 또한 영웅이다.
  또한 우리는 묻고 싶다. 우리는 왜 영웅을 밖에서 찾고 있는가? 우리 마음속에 영웅의 씨앗이 있을 진대 우리는 누구나 영웅 될 소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스스로 자기 분야의 영웅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박해와 버림받음과 좌절과 실패는 바로 영웅이 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이다. 그 기회를 붙잡아 뼈를 깎는 노력으로 이겨내고 실력을 쌓아 모두 영웅이 되면 만들어진 밖의 영웅의 행방에 일희一喜 일비一悲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진짜 영웅이 되자, 그런 영웅이 되고 그런 영웅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모두 영웅들의 시험관이며 감독관이 되자. 우리 사회에 건전한 학술비평, 예술비평, 문화비평이 실종된 지 오래다. 비방은 많으나 비평이 없다. 비평의 부재는 가짜 영웅, 가짜 학자가 출현할 온상을 마련했다. 그리고 누가 영웅의 탈을 씌워 주거든 즐겁게 쓰되 자만하거나 착각하지 말자. 하인스 워드의 어머니가 경고한 것처럼 항상 겸손할 것이다.
 

<西蕉 李符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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