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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융연구원 회보 '길'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입니다.
작성자 한국융연구원
발행일 2009년 10월 20일
권호 제10권 2호
ㆍ조회: 3014  
IP: 211.xxx.125
西蕉칼럼 - 몽유도원도의 비극성

西蕉칼럼 2009.10.

 

몽유도원도 夢遊桃源圖의 비극성

The Tragedy in Mong Yu Dowondo, The Painting of An Gyeon : In the dream I wandered over peach blosson's land

 

 


 

몽유도원도는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 安平大君이 1447년 음력 4월 20일 밤에 꿈에서 본 도원桃源을 당시 최고의 화가였던 안견 安堅에게 일러 그리게 한 걸작품이다. 안평대군이 제기題記를 썼으며 당대 21명의 뛰어난 명사들이 각기 이를 칭송하는 시문詩文을 썼기 때문에 미술사학자 안휘준명예교수는 작품이 시詩. 서書. 화畵 삼절三絶의 경지를 구현한 작품으로서 한 시대의 역사적 현상을 대변하는 사료로서도 매우 큰 가치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단일 회화작품으로는 국내외에서 제일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하였다.

 

이 그림이 우리나라 박물관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기획전을 위해 13년 만에 일본 천리대학에서 보내와 추석 전후에 잠시 공개되었다. 13년 전에는 호암아트홀에서 여유 있게 관람하였는데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전시기간이 9일 밖에 되지 않아 추석 연휴 중 사람이 없을 만한 날과 시간을 골라 갔으나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몽유도원도를 보기위해서다. 박물관 직원들도 친절하게 안내를 했고 거기 서 있는 사람들도 침착하게 질서를 지키며 불평 없이 기다렸다. 세 시간을 기다려 깜깜한 기획전시실에 들어설 즈음 ‘1분만 보시오’라는 안내문을 보면서 조금씩 짜증이 났다. 다른 전시물을 거쳐 지나가는데 조명이 어두워서 안경을 쓰고도 설명을 볼 수 없어 답답했다. 불상 앞의 설명문은 불상을 비치는 조명이 역광이 되어 젊은이들도 설명문을 볼 수 없을 정도였고 지나가면서 빈 벽에 몽유도원도에 관한, 혹은 그 밖의 전시물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이 있을 법도 한데 주최 측과 후원기관과 기관장의 이름만 열거되어 있었고 ‘박물관은 미래를 지향할 것’이라는 일종의 마니페스토(선언문)가 있을 뿐이었다. 인쇄물이라야 간단한 사진이 든 팜프렛이 전부였다. 몽유도원도에 대한 요약된 소개책자가 있었다면 기다리는 동안 시민들이 읽고 교양을 높였을 터인데 전시장을 나와 일부러 입구 쪽 뎅그렁 빈 공간 한 귀퉁이에 있는 가게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안휘준 교수의 <안견과 몽유도원도> 개정판을 구할 수 있었다. 그 책은 같은 박물관의 다른 큰 샾에는 갖다놓지도 않았다. 전시장 입구에 광고만 했어도 많이 나갔을 것이고 그 책의 3분의 1 정도의 계몽용 책자를 만들었으면 더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의 보물을 1분 보았다는 만족감이상으로 그 가치를 인식했을 터인데 미래를 지향하고 시민 곁으로 다가간다는 국가 중앙 박물관이 이렇게 엉성해서야 어떻게 세계에 우리가 G20에 진입한 선진국이라고 자랑하겠는가.

 

전시방법, 공간처리, 동선, 조명, 설명문의 국제화, 교육 자료의 보급, 유물의 연구, 보존과 복원 등 기술적인 면의 선진화는 물론 박물관의 기본 과제일터이나 문제는 박물관이 고리타분한 ‘유물이나’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는 위험한 발상이다. 나의 생각으로 박물관은 일차적으로 ‘유물을’ 전시하는 곳이다. 그것도 잘 보존하고 잘 전시해서 우리의 과거의 유산을 널리 알리고 미래로 가는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유물을 고리타분한 것이 아니라 값진 유산으로 귀히 여길 줄 아는 정신을 국민들에게 길러 주어야한다. 박물관은 교육장이지 단순한 놀이터가 아니다. 박물관 관계자들이 이런 것을 모를 리 없고 나름대로 노력을 하는데 예산부족, 만성적 관료주의 등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때문에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나마 해외에 흩어진 유물들을 가져다가 짧은 기간이나마 우리나라에서 전시할 수 있도록 해주었으니 감사한 마음도 없지 않다.

 

그러나 세 시간, 또는 네시간 기다려서 1분, 그것도 쫓기는 마음으로 잘 안 보이는 작은 화첩을 머리를 맞대고 들여다보고 난 사람이면 자기나라의 물건을 이렇게 옹색하게 빌려보아야 하는 처지에 무엇보다 비애를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몽유도원도가 한 때 부산에 유입되어 한국 사람이 구입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며 몇 사람에게 보여주었는데 ‘돈이 없어서’ 그 유수한 명사 어느 누구도 사지 않아 다시 일본으로 가 흘러 흘러서 지금의 천리대학에 소장된 경유를 알면 비애를 넘어 몽유도원도의 처지와 우리자신에 대한 참담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보물은 국가가 나서서 영구임대를 하든가 전 국민 모금으로 사오든가 해야 할 몇몇 해외문화재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II

 

나는 오래전부터 몽유도원도에 관심이 많았다. 미술사적인 관심이라기 보다 심리학적인 견지에서 여러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안평대군에게 도원의 꿈은 어떤 의미를 안겨주었을까. 왜 안평대군이 꾼 꿈의 도원에는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와 달리 사람이나 가축들이 없고 빈 집 뿐이었을까. 안견이 그린 도원도는 과연 어느 마큼 안평대군의 꿈을 충실히 묘사하고 있을까. 도원도를 보고 찬시를 쓴 사람들의 도원에 대한 관념은 어떤 것이었을까. 더 나가 안평대군이 그토록 깊은 인상을 받은 도원의 꿈은 안평대군에게 무엇을 시사하고자 하였던가. 다시 말해서 무의식이 그러한 꿈을 보낸 데는 어떤 목적이 있었을까. 왜냐하면 꿈은 어떤 외부적인 경험의 결과일 뿐 아니라 아니 그보다도 흔히 자아를 넘어서는 객체정신의 목적과 의도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안평대군이 꾼 꿈은 보통 꿈이 아니라 ‘큰 꿈’으로 집단적 무의식에서 나온 원형적인 꿈이다. 원형적인 꿈은 황홀하든, 무섭든 깊은 충격을 주는 꿈으로 대개 인생의 위기에 나타난다. 안평대군의 꿈에 나타난 도원이 무한히 평화로우나 사람도 가축도 없이 다만 신적인 분위기만을 자아내고 있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안견 또한 그림 속에 일체의 사람의 이미지를 담지 않았다. 최소한 꿈꾼 사람과 그를 수행한 집현전 학사들, 그리고 그들에게 도원으로 가는 길을 가리켜준 사나이의 형상도 없다. 그건 화가로서 안견이 분명 잘 한 일이다. 만약 인물을 그림에 넣었다면 그는 시간에 얽매이게 된다. 한 폭의 그림에 모든 것을 함축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구경꾼을 그림 밖에 둠으로써 그의 도원도는 영원한 시간 속에 있게 된다.

 

그러나 안견의 그림 속에서 말할 수 없는 고적을 느끼게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계유정란 癸酉靖亂으로 안평대군과 이 그림에 찬시를 올린 김종서, 이현로, 그리고 박팽년, 성삼문, 이개 등의 사육신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 그 비극적 종말과 이 도원의 꿈이 보여주는 황홀한 아름다움은 얼핏 보아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그림이 풍기는 무한한 고적과 이 꿈을 그림으로 그리게 하고 찬시를 받을 정도로 도원의 꿈에 애착을 가졌던 안평대군의 마음 속 어딘가에 다가올 비극에 대한 예감과 충고 같은 것이 깃들어 있을 것 만 같다. 즉, 꿈은 안평대군에게 정치권력 싸움에 휩쓸리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세속에서 초연한 隱士 은사가 되기 보다 꿈에서 본 도원과 비슷한 지금의 부암동에 무계정사 武溪精舍를 지어 풍류를 즐길 뿐 아니라 정사政事를 도모했다고 한다. 이상향을 지상에 실현하려는 외향적 방법을 택했던가.

 

융학파의 분석가들은 피분석자들에게 꿈의 원형상을 직접 그려보도록 권한다. 그것은 불명확한 무의식의 이미지를 명료하게 드러냄으로써 인식하게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원형이 지닌 강력한 에너지를 화폭 안에 잡아두어 그것의 강한 영향력을 통제하는 목적도 가지고 있다. 도원의 이미지는 인류 보편의 원초적인 낙원이며 신선이 사는 영원한 세계, 즉, 자아를 초월하는 무의식계의 누미노제와 무시간성, 영원한 봄으로 대변 되는 자기원형상의 긍정적 측면을 상징한다. 안평대군은 자기원형상을 꿈에서 보았고 그것을 자신의 인격의 내적인 정신적 전체성으로 받아드리기보다 미적 감각에 도취되어 외부적 현실로 구현하고자 하였다. 자기원형의 긍정적 측면과의 동일시가 일어났던 것은 아닌지, 그래서 자아팽창이 생겼고 그와 동시에 그 당연한 귀결인 그림자에 의한 파멸의 운명을 자초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들은 물론 분석심리학적 관점의 환자의 그림 해석과 꿈의 현상에 관한 관찰, 그리고 꿈의 해석을 통한 치료를 오래 동안 해온 사람의 경험에서 나온 의문이자 추측이다. 물론 그것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아직 많은 사실을 알 필요가 있고 무엇보다도 도원도에 대한 그 많은 찬시들을 찬찬히 읽어보아야 할 듯하다. 안휘준교수의 개정판 <안견과 몽유도원도>(사회평론, 2009)는 여러모로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는데 큰 도움이 되었는데 찬시들은 그 책에 싣지 않고 있어 아직 읽지 못했다. 그러나 그 책에서 나는 몽유도원도의 ‘비극성’을 간접적으로 지지할만한 안평대군 자신의 고백을 보았다. 신숙주의 보한재집에 실려 있는 화기畵記에 나오는 말인데 안평대군이 자기가 10여년간 꾸준히 모은 서화를 신숙주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모으는 것이 다 자기의 병이라고 하면서 한 말이라고 한다:

 

“하아! 물건의 이루어지고 무너짐이 때가 있으며 모여지고 흩어짐이 운수가 있으니 대저 오늘의 이룸이 다시 내일의 무너짐이 되고 그 모음과 흩어짐이 또한 어쩔 수 없게 될는지 어찌 알랴“(안휘준, 앞의 책, 46쪽)

 

안평대군은 분명 이 말로서 사물의 모이고 흩어짐 뿐 아니라 인간사의 생성과 소멸을 가리키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西蕉 李符永 院長

Prof.em. B.Y. R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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