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letin

한국융연구원 회보 '길'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입니다.
작성자 한국융연구원
발행일 2008년 4월 1일
권호 제9권 1호
ㆍ조회: 3816  
IP: 211.xxx.125
분석심리학 이야기(1) - 알기 쉬운 분석심리학을 위하여

분석심리학 이야기 - (1)

Stories of Analytical Psychology

 

알 기 쉬 운 분 석 심 리 학 을 위 하 여

For the Easy Access to Analytical Psychology


 

이 부 영

Rhi,Bou-Yong


 

스위스의 정신과의사, 체. 게. 융 C. G. Jung (1875-1961)의 심리학설인 분석심리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날로 높아가고 있다. 융의 저서와 융을 소개하는 책도 많이 늘어났다. 여기저기서 분석심리학에 관한 강의나 세미나도 융 학파 분석가들에 의하여 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상담전문가들이나 수련자들 가운데서 보이는 관심일 뿐 일반대중에 까지 다다르지는 못한 것 같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사교모임의 대화에서 융의 아니마, 아니무스 같은 용어를 적절하게 쓸 줄 알아야 체면이 선다는 말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사교적 대화의 장식품으로 전락하거나 심지어 한 때 북 아메리카 대륙을 휩쓴 정신분석의 열풍처럼 분석심리학이 유행하기를 바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분석심리학처럼 이렇게 건강한 심리학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심리학적 지식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마음의 성질을 아는 것만으로도 도움을 받을 사람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분석심리학이 어렵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좀 미안한 마음이 들고 그동안 책을 너무 어렵게 쓴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전문가 학회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해산되었지만 일본에는 융 클럽이라는 분석심리학 동호인 모임이 전국적인 조직을 갖고 강연회도 열고 잡지도 내고 했는데 회원이 1000명 넘어 있었다. 그 10주년 기념 강연에 초청되어 간 일이 있다. 파티 자리에서 일본에는 왜 이렇게 융을 좋아 하는 사람들이 많으냐고 물었더니 거기 있던 일본의 젊은 여성회원들이 그건 융이 프로이드 보다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나는 한국에서 오히려 그 반대의 견해를 자주 들어왔는데 말이다. 프로이드 정신분석은 매우 합리적이고 체계적이어서 이해하기가 쉬운데 융은 구름 잡는 것처럼 포괄적이어서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이다.

 

융의 저서와 프로이드의 저서를 비교해 보면 그런 느낌을 더욱 뚜렷이 받는다. 프로이드는 문장도 쉽고 분명한데 융은 문장도 복잡하고 서술방식도 아주 비체계적이어서 비약이 심한가 하면 신화 종교의 방대한 자료의 숲을 헤치고 지나가야 하므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융과 프로이드에 관한 일본인 여성회원과 한국인 사이의 이와 같은 반응의 차이는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 국민성의 차이, 분석심리학을 처음 들여놓은 사람들의 소개 방법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 있겠으나 내 생각에 가장 중요한 요인은 한 쪽이 여성이고 다른 한쪽이 남성인데다가 의사라는 점에 있다. 정신과의사도 의학수업을 쌓은 사람이니 합리적 사고, 논리성, 객관적 증명, 구체적 대상의 정확한 파악 같은 것들에 전적으로 길들여져 있다. 게다가 의사들은 일차적으로 질병이라는 현상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그러니 건강한 사람의 마음, 상징이니 종교체험이니, 영성이니 하는, 언어로 남김없이 설명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현상에 대해서는 좀 거북해 하고, 그런 것은 의학과 상관이 없고 개인의 수양이라든가, 문학취미에 관계할 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혹은 19세기 서양의 유물론적 의학 사조의 전통을 이어받은 의학도답게 대부분의 의사들은 정신현상의 가치를 구체적인 신체기관이나 충동과 욕구로 설명하려는 프로이드의 이론을 알듯 모를 듯 종잡을 수 없는 융의 설명 보다 훨씬 더 재미있어 할 법도 하다. 모든 것은 확실해야 하고 설명되고 증명되어야 하며, 그 원인은 밝혀져야만 한다는 의학도의 사명감과 의지는 그 의사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차이가 없는 듯하다. 그러나 인문학이나 예술분야의 배경을 가진 여성의 경우는 많이 다르다. 이들은 아주 정교한 안테나 같은 감각으로 융의 학설을 감지한다. 그리고 그들의 예리한 직관은 그 학설 속에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새롭고 창조적인 것이 들어있음을 직감한다. 그래서 융과 그의 심리학이 그냥 좋다. 그들이 거기서 인지한 것이 무엇이냐고 설명해보라 하면 더듬거리며 그저 “ 대단한 것 ! ”이라고 한다.

 

이런 가설이 모든 경우에 해당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어디에나 예외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실 내가 아직 병아리의사일 때 융의 학설에 대한 나의 인상이 바로 그러했다. 대학병원 신경정신과 전공의로 수련을 시작하면서 대학원 석사논문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때 처음으로 융의 사상을 접하게 되었다. 아마 1960-61년경이었을 것이다. 논문의 주제가 무당의 ‘신병‘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일어판 융 선집 가운데서 융의 ’심리학과 종교‘를 먼저 읽었다. 그러나 나는 융의 말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융은 무의식을 프로이드와는 다르게 넓고 깊게 보는 것 같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겠는데 꿈에 나오는 이미지들을 왜 그렇게 이해해야 하는지, 한 이미지를 여러 신화, 종교현상에서 빌려온 수많은 유례들과 비교하는 것이 무슨 뜻이 있는지 몰랐다. 당시 나는 현존재분석의 창시자, 스위스의 루드비히 빈스방거 Ludwig Binswanger에 심취하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 가지었지만 그의 정신분열증 증례의 분석은 나를 크게 감동시켰고 나는 빈스방거의 정신분열증 관을 학술지에 소개하기 까지 했다. 아마 1961년 내가 전공의 2년차 일 때 일이다.

 

우리는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이론을 의과대학 3학년부터 들었다고 할 수 있다. 4학년에 처음으로 입수한 미국 정신과 원서에는 정신분석의 방어기제 등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충분히 소화시켜서 가르칠만한 교수가 없었다. 나와 두 사람의 학우들은 프로이드 정신분석이론을 배우러 당시 수도육군병원 정신과 과장으로 계시던 선배 선생님에게 여러 차례 다니면서 강의를 들었다.(1) 강의는 최고로 훌륭했다.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그런데 이론이 알기 쉽다고 해서 이론에 공감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론이 어렵다고 해서 반드시 그 학설을 싫여하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나는 당시 방어기제 설을 잘 이해했지만 무언가 답답함을 느껐다. 인간에게 그것을 넘어서는 힘 - 오늘날의 표현으로‘ 창조적 자율성 ’- 이 도시 없다는 말인가. 그런 회의를 느꼈을 때 실존분석, 혹은 현존재분석이라는 학파가 유럽에 있다는 소식을 접했던 것이다. 현존재분석은 나의 인생에서 분석심리학에 이르는 길목에서 풀고 지나가야 할 하나의 숙제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 이론에 대한 매혹을 취리히 대학 정신과의 롤란드 쿤과 메다드 보스의 각 한 학기의 세미나로 대부분 씻어버리고, 빈스방거 병원에서의 귀중한 체험으로 채웠다.

 

내가 그 당시에 융의 ‘심리학과 종교’라는, 초보자가 읽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논문을 읽기 전에 보다 쉬운 분석심리학의 안내서를 읽을 수 있었다면 나는 좀 더 빨리, 그리고 쉽게 융을 이해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과연 그 당시에 융을 이해하면서 동시에 융의 생각에 공감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모를 일이다. 아무래도 학설에는 각기 공부하기에 적절한 때가 있는 것 같다. 어떻든 무의식의 이해에는 장구한 시간의 경험을 요한다. 그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아무리 빨리 이해하려 해도 되지 않는다.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정신분석도, 실존분석도, 분석심리학도 모두 어렵다. 이론은 금시 머리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몸이 따라오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분석적 심리치료의 특징이다. ‘알기 쉬운 분석심리학’은 머리로 알 뿐 아니라 몸소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필자의 몫이기도 하지만 이론을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 소화하려는 독자의 기본자세를 필요로 하는 만큼 독자의 몫이기도 하다.

 

C. G. 융은 말했다. “ 가치를 지닌 모든 것은 비싸다. .....오랜 시간을 요하고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그런데 융은 만년에 일반대중을 위해 그의 사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엮어서 펴냈다. ‘인간과 무의식의 상징’이 그것이다. 다른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 무의식의 의미를 탐구하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자신과 남과의 관계에서 부딪히는 갈등과 고민의 근원을 통찰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진실은 매우 단순한데 있다. 세상과 사람을 보는 눈을 조금만 바꾸어도 많은 것이 보인다. ‘분석심리학 이야기’가 그런 목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주>(1) 당시 수도육군병원 정신과 과장은 유석진 교수였다. 같이 참여한 학우는 이상복 현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와 유태준 재미 교수로 실은 유태준교수가 자기의 숙부인 유석진교수에게 부탁드려서 이루어진 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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