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letin

한국융연구원 회보 '길'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입니다.
작성자 한국 융 연구원
발행일 2007년 10월 1일
권호 제8권 2호
ㆍ조회: 2822  
IP: 210.xxx.6
西蕉칼럼 - 이 가을에
< 西蕉 칼럼 >

이 가을에

  금년은 연초부터 바쁜일이 많았다. 연례적인 초청강연등으로 일본에 다녀온 뒤 바로 공적인 임무를 띄고 스위스 츄리히에서 열린 국제분석심리학회 학회장 연합회의에 가야했다. KAJA(한국융분석가협회)와 한국융연구원이 신청한 분석가 수련 안의 최종심사를 받는 자리이기도 해서 긴장이 없을 수 없었으나 잘 해결이 되었다.
5월에는 세계정신의학회 지역학술대회의 기조강연 준비로 바빴고 7월에는 중국 사천성 심리학회와 사천대학의 초청으로 쳉두成都에서「분석심리학 및 분석적 정신요법」에 관한 웍ㅤㅅㅑㅍ을 했고「중국문화와 정신치료」라는 주제의 학술대회에서「곽암의 十牛圖에 관한 심리학적 해석」을 강연했다. 정신분석을 정식으로 수련한 상해대학 교수와 도교철학을 바탕으로 한 정신치료를 소개한 분의 발표가 인상적이었다. 정신치료에 대한 대단한 열의를 현지에서 보고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서역문화와 상통하는 중국서부지역 고유의 고대유물을 접하게 된 것도 큰 소득이었다.
  8월 한 여름에는 아프리카 케냐, 짐바브웨의 대자연의 호기를 마음껏 향유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국제분석심리학회 학술대회에 한국융연구원의 연구원들과 그 가족과 함께 다녀왔다. 그곳 대의원총회에서 한국 융연구원을 수료한 세사람 : 이문성, 이도희, 박현순선생이 만장일치로 국제학회 정회원으로 인준되었고 뒤이어 KAJA의 승격, 즉 비수련군에서 수련군training group으로의 승격이 또한 만장일치로 인준되었다. KAJA의 수련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융연구원을 수료하면 별도의 시험없이 국제학회 회원자격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날이 마침 8월 15일이어서 우리나라 학회와 수련기관의 독립기념일이라고 하면서 모두들 기뻐하였다. 두가지 사안이 모두 금년 2월에 이미 국제학회 이사회를 통과한 사안이기는 했지만 마지막 관문인 대의원 총회에서 통과되어야만 했기 때문에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이 일은 우리나라 초유의 경사라고 크게 홍보하고 축하받아야 할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1983년부터 국제적으로 손색이 없는 수련계획을 마련하고 작은 인원이지만 착실하게 수련해온 나로서는 그저 후진들의 페르조나를 위해서 정해진 수순을 밟았을 뿐이고 오히려 늦은 감이 없지 않다는 생각이다. 교육자의 경험의 깊이보다 교육자의 숫자에 무게를 둔 국제학회의 수련기준은 재검토 되어야 하고 수련과정의 자질구레한 행정 절차 같은 것도 각 학회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쨌든 한국 융분석가협회는 국제적으로 그 의무와 권리를 행사해야 할 책임있는 위치에 올랐고 분석가를 양성하는 한국 융연구원의 책임 또한 더욱 무거워졌다.
  많은 수확을 거두고 아프리카여행에서 돌아오니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한국의 젊은이들 19명이 다 풀려난다는 소식이 있었다. 참 다행한 일이었다. 무슨 수를 쓰  든지 더 이상 죽이지 말고 살려보냈으면 하는 것은 모든 국민이 애타게 바라던 일이었고 그래서 피납자 가족 뿐 아니라 신문, 방송(일부 비겁한 익명 악플 네티즌을 제외하고는) 온 국민이 정부를 믿고 숨을 죽이고 말을 삼갔던 것이다. 사람들이 풀려나니 국내외에서 말이 많다. 일리가 있는 충고도 있다. 그러나 권력을 쥐기 위해서는 인간의 목숨을 버러지 같이 짓밟는 무도한 집단에 자기나라의 젊은 남녀 21명이나 붙들려갔고 그중 두명이 사살된 마당에 어느 냉혹한 정부가 원칙을 따지며 마냥 버틸 수 있었겠는가. 비록 실수가 있고 부분적으로 방법이 미숙했다 하더라도 정부가 자기나라 사람을 구하기 위해 가용인력을 총동원하여 애쓴 점은 높이 평가해 주어야 한다. 또한 死地에서 온갖 고초를 겪고 돌아온 사람들에게 더 이상 돌을 던져서는 안된다. 이들이 자신이 겪은 고통의 의미를 조용히 성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다만 바라는 것은 바로 가까운 북녘 땅에 오랜 세월 붙들려 있는  수많은 피납자들과 국군포로들을 데려오고 생사조차 알길 없는 이산가족의 간절한 소원을 풀어주는 일에도 정부가 이번 일에서 보인 그와같은 책임감과 열성으로 힘을 모아주었으면 하는 점이다.
  이번 사건의 원인은 한마디로 우리모두가 惡의 실체를 너무 가볍게 본 데 있다. 악한 것의 진실로 악함을 정말로 직시했던들 정부나 민간이 ‘여행 위험경고’이상의 예방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또하나는 모든 종교가 빠지기 쉬운 ‘구원자 원형’과의 동일시에서 빚어지는 자아팽창Inflation의 위험성이다. 자아가 팽창되면 惡의 실체를 보지못하게 되고 선한 의지만으로 惡을 바꿀수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탈레반은 주저없이 두사람의 고귀한 목숨을 죽였고 살인의 정당성을 공공연히 천명함으로써 그런 환상을 산산조각으로 만들었다. 그들의 상투적인 협박과 뒤집어씌우기를 ‘고도의 심리전술’이라고 높이(?) 평가한 신문논조는 이미 惡의 선전술에 말려들어간 순진함을 그대로 들어내고 있었다.
  ‘악마’는 때때로 인간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약간의 인간성에 속으면 심각한 위험에 빠지게 된다. 사람들은 공포의 대상에 대해 은연중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가 그 대상이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면 감격해서 곧 그 대상의 신봉자가 된다. 그러니 이제는 ‘악마’의 미소를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악마’는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증오감으로 살아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9월 중순에 나는 또 스위스로 가서 며칠동안 「老子와 융」이라는 제목으로 강의하게 되어 있다. 이 시대에 老子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의 말에 얼마나 귀를 기우릴지 모르겠다.
  저물어 가는 이 해의 마지막 언덕, 짧지만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는, 압축된 시간 앞에 서서, 이 가을에, 우리가 여름내내 겪은 삶의 교훈을 곰곰이 되새긴다면 우리는 아마 조금은 더 성숙해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겨울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지 아무도 모르기에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2007. 9. 8)
                                                                                                                     (西蕉 李符永 院長)
                                                                                                                          Rhi Bou-Yong
발행일 권호
50 西蕉칼럼 - 몽유도원도의 비극성 2009년 10월 20일 제10권 2호 3014
49 분석심리학 이야기(3) - 전체가 되는 것 2009년 4월 10일 제10권 1호 3212
48 융의 어록 2009년 4월 10일 제10권 1호 2346
47 西蕉칼럼 - 길을 걷는 사람들 2009년 4월 10일 제10권 1호 2485
46 분석심리학 이야기(2) - 분석심리학에서 본 '무의식' 2008년 10월 1일 제9권 2호 6682
45 융의 어록 2008년 10월 1일 제9권 2호 3322
44 西蕉칼럼 - 여름의 축제와 가을의 수확 2008년 10월 1일 제9권 2호 2034
43 분석심리학 이야기(1) - 알기 쉬운 분석심리학을 위하여 2008년 4월 1일 제9권 1호 3816
42 융의 어록 - 돌에 관한 명상 2008년 4월 1일 제9권 1호 2231
41 권두사 - 開 院 1 0 周 年 2008년 4월 1일 제9권 1호 1967
40 분석심리학 용어해설 - 저항 Resistance 2007년 10월 1일 제8권 2호 5795
39 西蕉칼럼 - 이 가을에 2007년 10월 1일 제8권 2호 2822
12345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