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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융연구원 회보 '길'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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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1년 3월 31일
권호 제12권 1호
ㆍ조회: 4777  
IP: 211.xxx.125
분석심리학 이야기(7) - 대화

분석심리학 이야기 (7)

Stories of Analytical Psychology


대 화

The Way of the Dialogue



C.G. 융은 자기의 정신치료를 변증법적 과정’dialektischer Prozess이라고 말했다.

치료자가 권위를 가지고 환자를 대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와 함께 체험하는 자’ Miterlebender로서 각기 그 고유의 가치체계를 가진 개인 대 개인으로 서로 주고 으면서 발전해가는 과정이라는 뜻이다. 치료자는 근엄하고 표정 없는 얼굴로 환자의 말을 듣기만 하고 묻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하고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는 사람으로서 환자의 마음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환자 또한 이에 대한 반응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런 방식으로 서로의 가치체계를 비교하는과정인데 나는 이 변증법적 과정을 알기 쉽게 대화의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융 학파의 대화는 의식면에서의 대화 뿐 아니라 무의식과의 대화를 중시한다. 환자의 무의식 뿐 아니라 치료자 자신의 무의식과의 대화, 혹은 의시소통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의식면의 의사소통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옳다고 확신하고 있는데 무의식은 전혀 다른 자신의 모습을 보일 때 우리는 다시 한 번 의식의 판단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작은 ’(자아)의 판단에서 큰 나(자기), 즉 전체정신의 판단으로 시점을 옮겨 진정으로 나 자신의 마음과 일치된 행동을 할 수 있다. 모든 정신적 분리, 신경증적 집착, 후회, 위선, 이중성, 원망과 비난이 자기와의 불일치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융 학파의 정신치료는 치료자의 전체정신과 환자의 전체정신과의 진지한 대면이다.

 

일반 사람에게 무의식이란 생소한 말이다. 꿈이 무의식을 표현하므로 꿈의 메시지를 살펴보자고 하면 황당한 표정으로 코웃음 치는 사람이 제법 많다. 경험이 없으니 그러는 것도 이해가 된다. 비합리적인 것에 대한 개명된인간들이 갖는 공포심이 그 뒤에 깔려있다. 그런데 무의식과의 대화는 고사하고 의식면에서의 대화조차도 제대로 안되어 있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실정이다. 그리고 임상현장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시대와 우리 사회에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것이 대화의 과정이다.

 

대화에 필요한 조건이 있다면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대화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두 사람 중의 한 사람도 대화할 마음이 없는 사람들사이에서 대화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모든 대화 이전에 먼저 대화의 자세를 갖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환자는 우울이라든가, 강박적 사고라든가, 불안 등 증상이 주는 고통, 인간관계의 어려움 등 당장 해소되어야 할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에 의사의 도움을 청하고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며 누구와도 대화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환자의 가족은 환자의 고통이 자기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생각하지 못하고 가족이 왜 치료자나 환자와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임상에서 환자의 고통이 왜곡된 가족관계의 증상인 경우를 너무나 자주 보고 있다. 아픈 사람은 사실 이른 바 건강하다는 가족들에게 숨어 있는 병적인 요소들을 빙산의 일각처럼 한 몸으로 안고 이를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 가족관계의 개선 없이는 환자의 상태가 호전과 악화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가족관계의 개선은 병의 경과에 매우 좋은 영향을 끼친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부쩍 부부 치료니 가족치료니 하는 특수한 치료법이 성행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화할 마음을 가로막는 요인은 무엇인가. 첫째로 무지와 편견이다. 마음의 건강에 대한 그렇게 많은 책이 나왔으나 사람들은 심리학에 관해 상당히 무지하다. 특히 전통적 교육을 받고 사회에서 열심히 일해온 한국의 기성세대 남성들은 여성심리에 매우 무지하다. 여성이 남성과 다른 심리를 가지고 있는지 조차 상상을 못한다. 모든 것은 남성인 자신의 관점에서 볼 때 별 문제가 없었다고 인식하고 아내가 공연히 대수롭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고민하거나 투정을 부린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내에게는 남편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바로 그것,, 따뜻한 개인적인 배려가 매우 중요하다. 여성은 남성의 무의식의 측면, , 의식의 그림자에 해당되므로 남성이 여성을 이해하기란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아내가 아프거나 다치거나 아니면 자기의 고통을 큰 소리로 호소하지 않는 한 모든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밖에서는 증권거래, 세계 및 국내정세, 혹은 신지식, 정략적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훤히 들여다 볼 줄 알아도 안으로는, 즉 그의 아내, 자신의 아니마(남성속의 여성성)와의 관계에서는 장님이나 다름없다. 그가 아내를 이해하려면 현미경을 들여다보듯이 작고 미세한 세계에 집중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한다. 이때 부부간의 대화가 서로를 이해하는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전통적 교육을 받은 한국의 남성은 명령과 복종의 수직적 인간관계의 행동규범은 배웠지만 대화의 방법에 익숙하지 못하다. “어떻게 어른에게 일일이 말대꾸야 !“ 아들의 의견은 번번히 묵살 억압되는 것이 미덕이라고 장려한 우리의 전통이었다.

 

대화의 마음을 가로막는 편견이란 어떤 것인가.

대화해야 소용없다는 비관적인 단정이다. 계란으로 바위 깨기다. 상대방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목석과 같은 존재라는 확신이다. 여기에는 늘 그럴 사한 이유가 제시된다. 여러 번 이미 대화를 해보았다는 등, 번번이 실망했다는 등. 그래서 이번에도 소용없을 것이라는 등.

내가 이런 그럴듯한 변명을 편견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들의 대화결과에 대한 예측이 너무나 절대적인 데 있다. 세상에 절대적이라는 말은 절대자, 즉 신에 해당되는 말이다. 이들은 상대방을 신이나 악마처럼 상상하고 있고 그것은 지나친 상상, 즉 치우친 생각이다. 그리고 이들의 말을 분석해 보면 그 이면에 대화하고자 하는 마음보다도 은연중에 내 의견을 관철해서 상대방의 고집을 바위 깨듯이 깨고 목석을 변화시키려는 의도가 있다. 이기고 지고,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단순한 권력욕을 가지고는 온전한 대화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

 

대화의 마음을 가로막는 무의식적인 요소가 있다. 그것은 분석심리학에서 말하는 아니마 아니무스의 영향과 관계가 있다. 알다 싶이 아니마는 남성의 무의식의 여성적 인격, 아니무스는 여성의 무의식의 남성적 인격이다. 대화의 마음을 가로막는 것은 이것들이 미숙한 상태에 있는 경우이다. 여성의 부정적 아니무스는 따지는 버릇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판단을 절대시해서 결코 이에 반하는 판단을 용납하지 못하는 완고함을 가지고 있다. 남성의 아니마가 미숙할 때에는 예민하고 쉽게 짜증내는 성향을 띄운다. 감상적인 감정, 참을성 없음, 멜랑콜릭한 감성이 모두 부정적 아니마의 특성이다. 이제 부정적 아니마를 가진 남성과 부정적 아니무스를 가진 여성이 만나서 대화를 한다고 가정하자. 무슨 일이 버러질 것인가. 여성이 다발총처럼 남성의 잘못을 줄줄이 엮어 내려간다. 그것은 모두 정확한 사실이지만 결론적인 판단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단죄이다. 남성이 조금 의견을 내보지만 여성의 논리(?) 정연한 반박에 금방 말이 막힌다. 남성의 자존심, 다른 말로, 그의 상처입기 쉬운 아니마가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그는 견딜 수 없는 짜증과 분노에 휩싸인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겠는 지는 상상에 맡긴다. 그 뒤부터 남성은 여성이 대화하자고 하면 겁이 나서 슬슬 피하고 여성은 그런 남성을 보고 환멸을 느끼거나 이 사람과의 대화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재확인한다.

 

대화의 마음가짐은 무엇보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자 하는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서로 상대방의 말을 듣고 그 입장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 없이 대화는 제대로 진행되기 어렵다. 남의 이야기를 먼저 들을 자세를 가진 그 사람 또는 그녀야 말로 대화할 자격을 갖춘 사람이다. 그럴 때 각자의 주장을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다. 부정적 아니무스를 가진 여성이 남의 말을 듣고자 하는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신성불가침한 판단이 무시될까 불안하기 때문이다. 회의는 광신을 부른다. 부정적 아니무스는 자신의 의혹을 보지 않으려고 상대방에게 반격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런 여성은 아니무스 의견이 입에서 터져 나오려 할 때 일단 멈추고 그 의견을 한 번 비판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기의 의견이 항상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너무 속상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아니라는 말은 틀렸다는 말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옳다는 말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의견도 상대적으로 옳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부정적 아니마의 소유자인 남성은 아니무스 의견이 비록 경직되고 완고하고 때로는 이치에 안 맞는다 하더라도 인내성 있게 또한 진지하게 경청하는 태도를 길러야한다. 그리고 그녀가 호소하는 것이 말이 아니라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이를 말로 표현할 필요가 있다. “ 당신의 그 말은 맞는 말이다.” 이 한 마디로서 대화의 문이 활짝 열리는 수가 있다.

 

대화라고 해서 조용히 차근차근 이성적으로 말을 주고 받아야하는 것은 아니다. 감정도 나오고 흥분도 하고 언성도 높아진다. 그것을 너무 억제하지 말 것이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상대방 말을 경청하고 상대방에게 말할 기회를 주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또한 대화의 목적을 사사로운 의식적 자아의 이익에 두어서는 창조적 성과를 얻을 수 없다. 가식과 체면이 아닌, 사사로운 이익도 잔꾀도 아닌 나의 전체마음을 들어서 상대방의 전체의 마음과 대면할 때 그 대화의 결과는 두 사람 모두에게 큰 치료적 의미를 가져다줄 것이다.

 

중궁이 공자에게 인 에 관해서 여쭈어보았을 때 공자가 말했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하지 말아라. (論語 顔淵 12 .2.)


西蕉 李付永 院長

Prof.em. B.Y. R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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