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letin

한국융연구원 회보 '길'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입니다.
작성자 한국융연구원
발행일 2012년 10월 23일
권호 제13권 2호
ㆍ조회: 3168  
IP: 211.xxx.125
분석심리학 이야기(10) - '불안한 낙관주의'

분석심리학 이야기

Stories on Analytical Psychology

 

불안한 낙관주의

Anxious optimism

 

 

카알 하인리히 피에르츠 K.H. Fierz - 융 학파의 정신과의사. 1960년대 스위스 취리히 C.G. 융 연구소 교육 및 지도 분석가. 정신분열증(조현 병)의 정신치료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쟈코메티의 인물 조각상처럼 키는 호리호리하게 컸고 얼굴은 늘 햇볕에 탄 구리 빛에다 검은 머리카락과 유난히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 덕분에 아주 재치있고 호감이 가는 동양 신사 같은 풍모였다. 그러나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는 그렇게 호의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동양인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동양인 특유의 흐리멍덩함을 싫어했고 심하게 오해하기 조차했다. 누가 보아도 친근감을 자아내는 얼굴 뒤에 아주 고약한 성격을 숨겨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는 그의 명성과 정신분열증환자의 정신치료라는 어려운 작업을 다년간 해오고 있는 이 카리스마 넘치는 거인을 나는 더 없이 존경하였고 그의 비방을 전수받고 싶어 했다.

 

1964년경이었을 것이다. 내가 아직 연구소의 디플로마과정에 있을 때 취리히에 <취리히베르크 클리닉>이라 부르는 융 학파 클리닉이 생겼다. 피에르츠 박사가 그 클리닉을 맡는다기에 나는 주저 없이 그곳 의사로 들어갔다. 피에르츠 박사는 스위스 북동부 보덴호수가에 있는 백년넘은 빈스방거 집안의 <사나토리움 벨뷰> 상급의사로 여러 해 동안 그곳 진료 진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 병원은 주로 정신병의 정신치료를 행하는 치료공동체로 유명한 국제적인 사나토리움이었다. 그는 자신이 그곳을 떠남과 동시에 그곳의 치료모델을 취리히의 클리닉에서 재현한다고 했다.

 

<취리히베르크 클리닉>은 취리히 시 동쪽 언덕, 숲이 욱어진 주택가의 3층 주택 하나와 이층집 한 채로 이루어져 있었다. 15-20 병상에 간호인력, 자원봉사격인 연구소 연구원 을 제외하곤 의사3, 심리학자 2명의 조촐한 규모였다. 보통가정 분위기를 지키고 있었고 당연히 흰 가운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나는 여기에 근무하면서 정기적으로 피에르츠 박사와 만났다. 주로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있는 치료자 모임에서 다른 동료들과 함께 만났다. 그런데 그것으로는 좀 미흡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청하여 내가 보는 환자에 대한 개별적인 지도(지도 분석)를 받기로 했다.

 

내가 처음으로 지도를 받은 환자는 망상형 정신분열증을 앓는 50대의 남성으로 말은 횡설수설,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하고 망상과 환각을 활발히 겪고 있었다. 약물투여와 함께 철저한 정신치료를 시작하면서 나는 환자의 횡설수설 과 단편적인 망상들을 매번 면담이 끝난 뒤에 자세히 기록했다. 융이 조발성 치매 환자의 사고내용에서 환자의 진정한 의도와 원형적 상징을 발견한 것처럼. 환자와 함께 그림을 그렸고 그의 그림의 심리적 의미를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자료들을 가지고 피에르츠 박사의 연구실 문을 두드렸을 때 나의 가슴은 뛰었다. 그는 이 기록에 대해 어떤 상징적 해석을 해줄 것인가 상상하면서 -. 나는 내가 기록한 대화내용, 특히 환자의 독백 같은 진술을 피에르츠 박사 앞에서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반응은 실망을 넘어 충격이었다. 다 듣고 나서 지긋이 그 까만 눈동자를 나에게 집중하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환자가 당신이 하는 말의 내용을 듣고 반응하는지 아니면 당신이 말할 때 손을 이렇게 여러 번 내저은 것을 보고 반응하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또 말했다. “환자는 속속드리 밝히는 것 durchleuchten 보다 속속드리 따뜻하게 해주는 것 durchwaermen 을 필요로 합니다.” 이제야 나는 그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환자를 대하는 공감적 태도의 중요성을 지적한 셈이다. 그러나 수수께끼같은 환자의 고태적인 사고내용의 상징에 관해서는 그로부터 시원한 대답을 얻지 못했다. 3개월 뒤에 그 환자는 집안 사정으로 퇴원했다. 3개월동안 나는 정말 열심히 그와 대화를 나누고 그를 돌보았다. 속속드리 따뜻하게 해주었는지는 몰라도 그를 우리가 사는 현실로 데려오려고 애썼다. 그런데 그는 퇴원하는 날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나를 관찰했습니다. ”(Sie haben mich beobachtet.) 베오바하텐 beobachten (observe) 이라는 말은 진찰한다’, ‘인지한다는 말도 있지만 객관적인 관측과 감시 감독에 가까운 관찰을 말한다. 환자의 나에 대한 점수가 과히 후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볼 때 지리멸열된 환자와 감정적 관계를 형성하는데 3개월은 너무나 짦은 기간이었고 게다가 감정의 언어적 행동적 표현에 대한 동서양의 차이는 감정소통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을 것이다.

 

불안한 낙천주의는 피에르츠 박사가 클리닉에서나 융연구소 강의에서 자주 쓰던 말이었다.

정신분열증 등 정신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가져야할 태도로서 제시한 것이다. ‘불안한이라는 말 대신에 걱정 어린이라는 말을 써도 좋을 것이다. 그냥 낙천주의가 아니고 늘 약간 불안 걱정을 가진 채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것, 그런 태도를 말한 것이다. “나는 이보다 더 중한 환자도 성공적으로 치료했다. 그러나 이보다 가벼운 환자를 고치지 못했다.” 그가 환자 가족에게 하던 이 말 속에 불안한 낙천주의의 원천이 있다. 치료자 모임에서 중한 환자가 좀 차도를 보인다거나 많이 좋아졌다는 말이 나오면 피에르츠 박사는 그 말끝에 꼭 낮은 목소리로 토이 토이 토이 하면서 앞의 탁자 모서리를 두드렸다. 나쁜 귀신이 이 말을 엿듣고 환자에게 해를 가하지 못하도록 하는 스위스식 주술행위였다.

 

19673월 나는 오래동안 기다렸던 빈스방거 가의 사나토리움 벨뷰에 들어갔다. 이미 융학파 분석가의 자격을 얻은 뒤였다. 여기서 나는 치료공동체의 진면목을 경험했고 취리히베르크 클리닉에서 아쉬웠던 것들을 많이 보충할 수 있었다. 그곳의 경험에 대해서는 따로 소개할 것이다. 그러나 피에르츠 박사의 몇 안되는 교훈은 길이 남아 하나의 지침이 되고 있다. “ 불안한 낙천주의 는 비단 환자 치료 뿐 아니라 오늘의 이 혼돈의 세게를 치유하려는 사람들이 주목해야 할 자세일 것이다.


(李符永 B.Y. R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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