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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융연구원 회보 '길'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입니다.
작성자 한국융연구원
발행일 2011년 10월 18일
권호 제12권 2호
ㆍ조회: 7371  
IP: 211.xxx.125
분석심리학 이야기(8) - 단어 연상검사와 콤플렉스의 발견

분석심리학 이야기

Stories of Analytical Psychology

 

 

단어 연상검사와 콤플렉스의 발견

Word Association Test and the Discovery of Complex

 

 

역사상의 모든 발견은 극히 사소한 것에 대한 관심과 주목에서 생겨나는 경우가 많다.

창의적인 인간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것에 주목하고 깊이 생각하여 그 뒤에 숨은 진실을 캐낸다. 나무에서 과일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존재를 확인한 뉴톤의 사례는 고전적인 사례에 속한다. 카알 구스타브 융도 그러한 사람이었다.


190025세의 젊은 융은 오이겐 블로일러가 주임교수로 있는 취리히 대학 정신병원으로 정신과의사의 수업을 쌓기 위해 들어갔다. 1901년 융이 주임교수에게 학위 논문의 주제를 청했을 때, 블로일러 교수는 정신분열증의 관념붕괴를 실험적으로 연구하라고 권했다. 그 당시 융은 연상검사를 통해 분열증환자(당시 조발성 치매)에서 특이한 이미지가 나타남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융도 지도교수도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융은 심령술의 영매인 한 소녀의 비교적 체계적인 정신적 해리현상을 대상으로 학위논문을 썼다.

 

그의 단어연상검사에 관한 연구는 1903년부터 여러 해에 걸쳐 본격적으로 수행되었는데 프란츠 리클린 1세는 그의 초기 공동연구자였다. 이 단어연상검사는 당시 독일의 심리학자, 빌헬름 분트의 학파에서 활발히 연구되던 것이다. 많은 단어를 자극어로 삼고 그 단어를 부를 때 연상되는 단어를 피검자에게 말하도록 하여 연상과정을 조사하는 것인데 분트학파에서는 연상반응의 언어학적 형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자극어를 불렀을 때 말이 막혀 대답을 못하거나, 생각이 안 나는 등, 연상이 잘 안 되는 경우, 이른바 연상 실패의 사례는 연구대상에서 모두 배제하였다. 그런데 융은 바로 이 연상 실패사례에 주목하였다. 왜 이 단어에 대해서는 연상이 잘 안 되는 것일까 의문을 가지고 추구하였고 결국 그 이유는 자극어가 피검자의 마음속의 어떤 심리적 요소를 자극하여 거기에 내포된 강한 정동이 사고의 흐름, 즉 연상을 훼방 놓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심리적 요소를 강한 감정에 어린 콤플렉스(복합체)’ affektbetonter Komplex라고 불렀다. 융은 새로이 100개의 자극어를 골라 융의 단어연상검사를 만들었고 이것은 피검자의 콤플렉스를 찾아내는 검사로 임상과 교육현장에서 현재까지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사소한 일 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현상을 어느 측면에서 보느냐하는 것이 그 사람의 시야를 엄청나게 다른 방향으로 옮겨놓는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분트가 무시한 연상 실패에 눈을 돌림으로써 융은 무의식에 이르는 길을 개척하게 된 것이다.

 

콤플렉스 개념을 세우는 데는 프로이드의 억압설의 도움이 있었다. 그래서 융은 자기의 연상검사 연구논문을 프로이드에게 보냈고 프로이드는 이에 응답하여 두 사람은 1907년 빈에서 극적인 상봉을 하게 된다. 그 뒤 프로이드와 나란히 미국 클라크대학에 초청 받게 된 것도 연상검사 연구 덕분이었다. 만남은 헤어짐의 시작이었고 결국 융은 프로이드의 리비도학설을 비판하여 그를 떠났으며 자신의 학설을 분석심리학이라 불렀는데 처음 얼마동안은 콤플렉스 심리학이라고도 불렀다. 그만큼 콤플렉스 학설은 그의 초기 학설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1905년 취리히대학 정신과의 전임교수가 되었고, 처음에 학위논문의 주제였던 분열증의 관념붕괴에 대한 연구를 주임교수와는 약간 다른 각도, , 정신 병리학 적이라기보다 심리학적인 각도에서 다루었다. 융은 연상검사를 정신분열증환자에게 실시하여 환자의 횡설수설 속에서 환자가 진정으로 호소하는 뜻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1907년 발간된 조발성치매의 심리학이라는 논문은 그 연구의 결실이었다. 연상검사의 연구는 융에게 정신분열증의 정신치료를 처음으로 시도하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분열증은 조발성 치매라고 하여 불치의 병이라고 방치되던 시절이었다. 그의 회상록에는 여러 흥미있는 치료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한 중년여성에서 연상검사와 꿈을 통하여 그녀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비밀을 알아내고 그것을 그녀에게 밝힘으로써 병을 고친 사례도 그중 하나의 예이다. 그녀는 어떤 지체높은 집안의 남자를 사랑했으나 자기에게 관심이 없다고 속단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아이 둘을 낳고 길렀는데 어느 날 아는 이가 와서 그 첫사랑의 남자가 자기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난 뒤, 아이들을 목욕시키던 중 오염된 비눗물을 마시는 아기를 말리지 않고 내버려두었다가 당시 유행하던 장티프스에 걸려 죽게 만들었고 그 뒤 발병하여 병원신세를 지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거짓말 탐지기는 융이 고안한 것은 아니지만 범죄심리학 잡지에 원고를 기고하기도 했으니 연상검사를 범죄심리학에 응용하도록 길을 열어주는데 기여했다고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전류계와 호흡측정기를 이용하여 콤플렉스가 신체생리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한 연구들은 소박하나마 정신과 신체생리 상호관계에 관한 연구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스위스의 현존재분석의 창시자중 한 사람인 루드비히 빈스방거가 융의 지도하에 이 논문을 썼다는 사실도 특기할 만하다.

 

꿈의 해석방법이 심화됨에 따라 융 자신도 뒤에는 연상검사를 그렇게 자주 쓰지 않게 되었다. 콤플렉스는 꿈에서 풍부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어연상검사는 합리적인 사람들에게 콤플렉스의 존재를 인식시키는 수단으로, 혹은 꿈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메마른 의식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의식, 또는 무의식의 콤플렉스를 자극하여 활성화할 목적으로, 그리고 기억과 관련된 연구의 수단으로 아직 매우 유익한 도구이다.

 

분트가 연상검사에서 연상 실패를 제외시킨 것은 분트학파 사람들의 합리주의적인 태도 때문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합리적인 사람의 눈으로 비합리적인 것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연상 실패는 그들에게는 비합리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심성은 합리와 비합리의 양면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융은 바로 사람들이 놓지고 있던 그 비합리적인것의 실체를 감득한 것이다. 융의 수제자 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는 그의 융 전기에서 융의 무의식관은 19세기 서구의 과학 합리주의의 종언을 의미하였고 모든 융을 둘러싼 찬반의 분쟁이 그로부터 나왔다고 하였는데 일리 있는 말이다. 다만 그는 항상 정신에 대한 전체적 접근을 강조하였고 결코 정신의 합리적 측면을 무시하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싶다.


(李符永B.Y. Rhi)

발행일 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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