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letin

한국융연구원 회보 '길'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입니다.
작성자 한국융연구원
발행일 2011년 10월 18일
권호 제12권 2호
ㆍ조회: 6567  
IP: 211.xxx.125
융의 어록

융의 어록

C.G. Jung speaking

 

 

 

 

 

원형이 지닌 누미노제의 작용을 스스로의 체험으로 알지 못하는 자는 그가 실지 임상에서 그것과 대면하였을 때 원형이 지닌 부정적 영향을 거의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원형은 과대평가되거나 과소평가될 것이다. 왜냐하면 경험적인 척도를 지니지 못하고 다만 지적인 개념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개념에 대하여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사람들이 바라던, 체험하지 않아도 되게끔 보호해 주는 안일함이다. 심혼은 개념 속에 살아 있는 것이 아니고 행위와 사실 속에 살아 있다. 사람들은 단어의 나열만으로 개를 난로가에서 나오도록 유도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과정을 끝없이 반복하고 있다.


* 야훼 역음(이부영 역) C.G. 융의 회상, 꿈 그리고 사상, 집문당 에서

 

 

 

 

 

 

 

 

 

 

현대 정신치료에서 의사나 정신치료자는 환자와 그들의 감정과 글자 그대로 함께 가야한다고들 요구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의사 쪽에서 적극적으로 간여할 필요가 있는 경우도 흔하다.*

 

 

 

 

 

 

융의 어록

C.G. Jung speaking

 

정신분열증(조현증調絃症)의 심리적 이해와 치료

C.G. Jung

 

환자와의 작업을 통해서 나는 피해망상과 환각이 하나의 의미의 핵을 지니고 있음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하나의 인격이 그 뒤에 있고 하나의 생활사, 하나의 희망과 욕구가 있다. 우리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문제다. 정신병(Psychose)에는 하나의 보편적인 인격심리학이 숨어 있다는 것, 여기서도 오랜 인류의 갈등이 재발견된다. 멍청하고 감정이 없거나 바보처럼 보이는 환자일지라도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의미있는 것, 훨씬 더 많은 것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처음으로 밝혀졌다. 엄격히 말해서 우리는 정신병에서 새로운 것이라든가 미지의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존재의 바탕을 거기서 만나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은 당시의 나에게는 무척 강렬한 감정체험이었다.(C.G. 융의 회상, 꿈 그리고 사상 p.149)

 


 

 

겉으로 보면 정신병 환자에게서는 오직 비극적인 파괴만이 보인다. 우리의 눈에 띄지 않는 심혼의 다른 측면의 인생을 보는 경우란 거의 없다. 우리는 환자들이 보이는 외관에 속는 수가 흔히 있다.(C.G. 융의 회상, 꿈 그리고 사상 p.150)

 


 

 

이미 성공적인 치료를 받고 있는 정신분열증 환자에게서 위험을 알리는 증상이나 특히 파괴적인 꿈들을 제때에 인지하지 못할 경우 정서적인 문제에 휘말려서 정신병이 재발하거나 급성 초발初發 정신병을 일으키게 된다. 이렇게 일이 진전될 때 취할 수 있는 치료나 제지에 필요한 것은 결코 격렬한 처치가 아니다. 일상적인 치료 조치를 통하여 환자의 의식을 무의식으로부터 확실히 떼어놓도록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환자가 자기의 정신적 상황에 관한 그림을 연필이나 색채화구로 그리도록 가르치면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겉보기에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던 혼돈된 전체 상황이 가시적인 것이 되고 객관화되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되며, 분석되고 해석될 수 있다. 이 방법의 효과는 원초적인 혼돈된, 혹은 끔찍한 인상을 어느 정도 그 앞으로 밀어놓은 그림에 의해 대치하는데 있는 것 같다. 무서운 것은 그림에 의해 사로잡히고’,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깎아 내려지고, 친숙한 것으로 바뀌어버린다. 그리고 만약 환자가 위협적인 정감을 통해 원초적 체험을 상기했다면, 그것은 거기에 관해 그린 그림에게 떠맡겨지고 충격은 억제될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의 좋은 예는 성 니콜라우스 수사의 무시무시한 신의 환상이다. 그는 이것을 한 남부 독일 신비가가 가진 도표의 도움으로 오랜 명상 끝에 삼위일체의 그림으로 변환하였는데, 그것은 오늘날 스위스 작젤른Sachseln의 교구교회에 걸려 있다.(융 기본저작집 제 1p.339)

 


 

 

 

정신분열성 소인의 특징은 일반적으로 평범한 콤플렉스에서 나온 정감이 신경증환자의 경우보다 훨씬 깊은 충격을 주는 결과를 빚는다는데 있다. 심리학적인 입장에서 볼 때 정감적 속발續發현상이 증후학상으로 정신분열증 특유의 것을 형성한다고 할 수 있다. 그 속발 현상은 이미 강조한 대로 비체계적이며 혼돈스러운 우연이다. 그것은 그밖에도 어떤 종류의 꿈들과 비슷하여 원시적 혹은 고태적 연상聯想 형상形像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신화의 주제 및 신화적 관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융 기본저작집 제 1pp.339-400)

 


 

 

일반적으로 치료의 예후에 환자의 지능과 교육 정도는 매우 중요하다. 내가 보기에는 급성기의 증상이 해소되기 시작한 경우나 병의 초기 단계에서 증상, 특히 정신병의 내용을 해명하는 상담은 큰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원형적 내용에 매혹된다는 것은 특히 위험하기 때문에 그 내용을 보편적이고 비개인적인 의미로 해명하는 것은 특히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콤플렉스에 관한 통상적인 토론과는 좀 대립되는 작업이다. 위에서 든 콤플렉스들은 본래 고태적 반응과 보상을 일으킨 원인들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언제라도 다시 같은 결과를 빚어 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자의 관심을 개인적인 자극원刺戟源에서 최소한 일시적이나마 분리해, 환자로 하여금 그의 혼란된 상황 속에서 보편적인 방향 감각과 전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지적인 환자에게는 가능한 한 많은 심리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환자가 여기에 관해서 알면 알수록 그의 예후는 더 상태가 좋아진다. 그 까닭은 만약 그가 필요한 지식으로 무장되어 있다면 새로운 무의식의 폭발을 이성으로 맞이하고, 그러한 식으로 무의식의 낮선 내용을 통합하며, 그것을 그의 의식 세계에 통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자기의 정신병의 내용을 기억하는 사례들에서 그 내용을 환자와 더불어 자세히 설명하고, 가능한 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도록 힘쓰고 있다.(융 기본저작집 제 1p.347)

 


 

 

 

물론 이러한 과정은 의사에게 정신의학적 지식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그는 신화학, 원시인 심리 등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지식은 오늘날 정신치료자의 장비에 속한다. 그것은 계몽시대가 오기 전까지는 의학지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중세의 파라셀수스파 의사들의 예를 생각해보라.) 특히 고통받고 있는 상태에 있는 인간의 심혼을, 그에 관해서는 다만 개인적인 콤플렉스만을 알 뿐인 문외한의 무지로 대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신체의학이 해부학과 생리학에 대한 철저한 지식을 전제로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객관적인 인체가 있는 것처럼 또한 특수한 구조와 활동을 지닌 객관적 정신이 존재하며, 정신치료자는 적어도 이에 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물론 이 점에서는 과거 반세기 동안 변한 것이 거의 없다. 내가 보기로는 이론을 형성하려는 몇가지 성급한 시도가 있기는 하나, 이것은 상담실의 편견과 사실에 관한 지식의 결핍으로 좌초되고 있다. 비교해부학의 결과에 비길 만한 토대가 그나마 확고해지기 전까지는 우리는 정신 현상의 모든 분야에서 아직 많은 경험을 수집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신체의 상태에 대해서 심혼의 구조보다도 무한히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신체생물학은 신체적인 장해를 이해하고 결국 인간을 이해하는데 앞으로 그 중요성이 증가될 것이다.(융 기본저작집 제 1p.347-348)

 


 

 

물론 한편으로 생리학과 뇌병리학, 다른 한편으로 무의식의 심리학이 서로 손을 잡을 수 있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경과해야 할 것이다. 그때까지 그 둘은 분리된 길을 전진할 것이다. 그러나 전체 인간과 작업해야 하는 정신의학은 환자를 이해하고 치료해야 하는 과제를 통하여 하나의 측면과 함께 다른 하나의 측면을 모두 배려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정신현상의 이 두 측면 사이에 입을 벌리고 있는 심연深淵은 상관할 것이 없다. 비록 우리의 현재의 통찰이 아직 두 기슭, 한편으로는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뇌의 실체,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적 형상들의 개연적인 비물질성을 서로 결합하는 다리를 찾아내는 것을 허락하고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다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확신은 연구자가 성급하고 참을 성없이 하나를 다른 것 때문에 소홀히 한다든가, 심지어 하나를 다른 것으로 대치하고자 하는 태도에서 그를 지켜줄 것이다. 자연은 물론 실체성없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신에 반영되어 있지 않았다면 그 또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융 기본저작집 제 1p.352-353)

 


 

발행일 권호
한국융연구원 회보 ‘길’지 우송에 대한 안내 1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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